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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려시대 고문서에 대한 연구는 많은 성과를 거두어 왔으나1), 한편으로
고문서의 양식이나 기능 등에 관한 체계적인 해명을 비롯한 과제들이 적지
않게 남겨져 있다. 고려시대 고문서 연구자들을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것
은 현존하는 고문서 수가 너무나 적다는 점이다. 지금까지 학계에 소개된
고문서 수는 寫本이나 사진만 남아 있는 것을 포함해도 100점에 못 미친
다. 이러한 사료 상황은 연구의 진전에 커다란 걸림돌이다. 그렇다고 가까
운 장래에 고문서가 대량으로 발견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. 앞으로 고려시
대 고문서 연구를 한층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
고문서 한 점 한 점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으리라
생각된다. 비록 문서의 실물이 남아 있더라도 충분한 분석이 이루어지지
않은 경우에는 그 문서의 眞僞 여부라는 기초적인 사실부터 재검토할 필요
가 있다.
본고에서는 고려시대 고문서에 대한 검토 작업의 일환으로서 공민왕 9
년(1360)에 국왕이 福州(현 안동) 牧使인 鄭光道에게 내린 敎書를 분석 대
상으로 삼아 그 진위와 전래를 둘러싼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. 이 교서는
한반도에 침입해 온 紅巾軍2)을 고려군이 물리친 것을 慶賀하는 글을 올린
정광도를 褒獎한 것이며, 현재 경상북도 안동시 북문동의 태사묘에 소장되
어 있다(<사진 1>). 정광도교서는 현존하는 유일한 고려시대의 교서로서
사료적 가치가 대단히 높다고 평가받고 있다. 그런데 이 정광도교서는 현
전하는 문서 이외에 또 하나의 문서가 존재하고 있다. 정광도교서는 1915
년과 1933년에 촬영된 적이 있어 이 사진들에 보이는 문서와 현존하는 문
서를 비교해 보면 인장이나 字體 등 여러 면에서 양자가 상이한 것을 알
수 있다. 후술하는 바와 같이 현존하는 문서에는 여러 의심스러운 점이 확
인되기 때문에 그 진위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. 이러한 이유로
본고에서는 정광도교서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시도하고자 한다.